[지디넷코리아 전하나 기자] 헌법재판소가 23일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를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당연한 권리를 되찾았다’는 반응과 ‘사이버 공간의 오염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맞붙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지난 2007년 인터넷상 익명 명예훼손과 악성 댓글을 막을 목적으로 실시됐지만 실효성 논란과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옥션, SK컴즈, KT 등 대규모 해킹 사건이 잇따르면서 인터넷 실명제가 오히려 개인정보 유출을 부추긴다는 지적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업계는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모습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헌재 결정 직후 성명을 내고 “인터넷 생태계를 왜곡시켰던 대표적인 ‘갈라파고스 규제’가 이제라도 폐지돼 다행”이라며 “이번 결정이 한국 인터넷 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막는 규제들에 대한 전반적 개선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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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게 했던 각종 인터넷의 부작용들은 해결되지 않고 여전히 사회 문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인터넷 명예훼손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가수 타블로의 학력위조 의혹 제기 사건이었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타진요)’라는 인터넷 카페가 개설되는 등 ‘인터넷 마녀사냥’ ‘온라인 재판’ ‘사이버 폭력’ 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계속돼온 타블로와 누리꾼들 간 공방은 얼마 전 해당 카페 회원 3명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으면서 마무리됐다.
성동규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인터넷 실명제는 출발부터 인터넷 정신에 위배된다는 위헌적 소지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과도한 규제로 평가받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나라는 이른바 ‘최진실법’ 등의 논의가 대두할 정도로 사이버공간의 익명성으로 인한 극단적 폐해 사례가 유독 많아 안전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실명제 폐지가 자칫 익명성을 무기로 인터넷 공간에서 원색적 비난을 쏟아내는 소위 ‘악플’을 무분별하게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올해는 대선정국을 앞두고 있어 유언비어성 글이 사이버공간에 범람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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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선거법상 실명제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또 실명제 폐지로 오히려 누리꾼들의 자정 능력 회복을 기대하는 의견도 나온다. 나현수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연구원은 “인터넷 게시판 글에 문제가 있을 경우 IP주소 추적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며 “실명제가 사이버공간의 부작용을 해결하는 효과보다 소통에 대한 위축 효과를 더 가져왔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공식 블로그를 통해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로 명예훼손과 악성댓글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업계는 실명확인을 없애는 대신 게시물 관리를 강화하고 있으며 누리꾼들은 악성 댓글이나 단순 비방은 자율적으로 신고하는 기능도 이미 시행하고 있다”며 “본인인증을 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IP주소 추적 등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갑론을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소셜댓글’이다. 소셜댓글은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본인 확인(실명제)이 아닌 온라인 사회관계망(SNS)을 통한 본인 확인이 골자로 악성 게시글 차단 효과가 높단 평이다. 초기 도입 단계에선 SNS 계정이 없는 사람은 사용이 제한적이라는 점이 한계로 작용했으나 페이스북 등 SNS가 대중적 매체로 자리잡고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가 3천만명을 돌파하면서 포털사이트 등의 회원 가입보다 더 간편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 소셜댓글인 ‘라이브리’는 연예인 자살로 사회적 화두가 된 악플 문제를 해결하자는 고민에서 기획, 탄생 배경부터가 인터넷 실명제 폐지의 당위성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서비스 개시 이후 3년여 만에 국내 주요 언론사, 공공기관 및 NGO, 국회의원 홈페이지, 쇼핑몰 사이트 등 총 1만 7천개 사이트와 제휴를 맺는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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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의미한 통계도 나왔다. 올 1월 52.5%를 기록했던 라이브리를 통한 스팸·악성댓글 비율이 지난달 4.9%로 대폭 줄어든 것. 김범진 시지온 대표는 “자유롭고 쾌적한 댓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자동 필터링 기술과 전문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스팸·악성댓글로 한 번 SNS 계정이 차단된 이용자는 라이브리가 설치된 모든 사이트에서 댓글을 달 수 없기 때문에 강력한 정화 효과를 발휘한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건강한 인터넷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악성댓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언론사와 정부기관 등과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포털과도 제휴하여 댓글 문제를 함게 고민하고 악성댓글뿐만 아니라 악성광고, 사이버테러 등의 대안이 될 여러 플랫폼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후속 조치에 부심 중이다. 이미 지난 연말 이후 인터넷 실명제 재검토를 전제로 제도 개선 작업을 벌여온 방통위는 헌재 결정의 내용과 취지를 바탕으로 명예훼손 분쟁처리기능 강화, 사업자 자율규제 활성화 등 보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포털 사업자들도 악플의 블라인드 처리와 모니터링을 확대 시행하는 방안 검토에 나섰다. NHN 관계자는 “일부 이용자에 의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글들에 대해서 적절히 대응해 건전한 인터넷 이용환경을 만들어 나가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