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엽 위즈돔대표
사람의 사람됨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극히 한정된 가능성 속에서 자라난다.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극도로 한정돼 있고 때로는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산다.
이렇게 만남의 기회가 박탈돼 불행한 인생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고 혹자는 불공평한 일이라고 할지 모른다. 위즈돔은 우리가 모두 생각하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새로운 차원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항상 그러하듯이 이런 사업이 가능했던 것은 대표이사의 고민과 방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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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위즈돔의 창업자 한상엽 대표는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왜 나는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와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며 성장해 왔다고 한다.
커가면서 그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또한 재미있고 즐거운 생활도 꿈꿨다. 돈이 없어서 겪었던 고난과 설움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고 즐겁게 살고 싶은 그런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경영대에 진학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04학번으로 입학했지만 그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깨달은 것은 ‘경영대가 돈 버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가 시작한 것이 뭉크(MUNC)라는 회사였다. 2005년이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중요하다. 물론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했지만 계기는 홍대 앞에서 시작됐다. 미술을 전공으로 하고 있지만 생계를 걱정하고 있던 미술학도들에게 그는 “잘만 그려봐라. 파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제안한다.
만화를 그리면 자체 제작해 판매하고 일러스트를 잘하는 사람의 그림은 티셔츠 제작에 활용하거나 네이버·다음·파란 등 포털 사이트 블로그나 미니 홈피의 스킨에 쓸 수 있는 이미지로 만들어 판매를 했다.
일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학생으로서는 돈도 제법 벌었다고 한다. 그런데 돈을 벌면서도 그는 돈을 벌 때보다 삶의 가치가 높아지고 역량이 강화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일이 생길 때 더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돈을 벌어가면서 거기에 재미를 느껴야 하는데, 어찌 보면 좀 엉뚱한 곳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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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버는 인생은 공허하다
“도대체 내가 사업을 왜 하지?”
고민의 출발점이었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20대였지만 막상 돈을 좀 벌어보니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사람들에게 베풀고, 함께 행복해지고, 나누고, 도와주고, 그래서 삶의 가치가 달라지는 그런 것들을 사업이 다 성공한 다음에 하려면 힘들 것 같더라고요. 이런 것도 훈련이고 그 과정이 살아가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래서 과정에서 이런 가치가 실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을 알게 된 게 이때였다. 2006년 네이버를 비롯해 국내 포털에서 검색했지만 하나도 걸리는 게 없었다. 하지만 구글에서 검색하니 무수한 결과물이 나왔다. 때마침 그와 뭉크 창업을 같이했던 선배가 ‘세상을 바꾸는 대안 기업가 80인’이라는 책을 줬는데 이게 결정타가 됐다. 한국에는 없는 게 명확했다.
“아무도 안 하니 내가 해 보자.” 이렇게 마음먹은 그는 넥스터스라는 실험적인 프로젝트 그룹을 만든다.
넥스터스의 목표는 3가지였다. 우선 한국에 없는 사회적 기업(그는 소셜 벤처라는 용어를 썼다)의 정보를 축적하고 만들어 이를 책으로 출간하는 것. 그리고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것. 그래서 소시지팩토리라는 소셜 벤처 콘퍼런스를 주최했다. 마지막으로 직접 소셜 벤처를 설립해 증명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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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나씩 하나씩 했다. 2007년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찾아가 사회적 기업의 현황을 탐방했다. “여기서는 정부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고 정부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문제들이 많았어요. 그런 문제들을 기업이 해결하고 있었죠.” 그렇게 해서 2009년 ‘아름다운 거짓말’이라는 책이 나왔다.
한상엽 대표에게 남은 마지막 미션은 소셜 벤처를 직접 설립해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입증하는 것. 그런데 군대를 제대한 그는 돌연 대우인터내셔널에 입사한다.
“시스템이 너무 없다고 생각했어요. 시스템의 부재를 극복해 보고 싶었죠. 대기업에 들어가면 뭔가 배울 줄 알았어요.”
결과는? “시스템은 결국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중심 잡는 사람들이 정신 차리고 꾸준히 중심을 잡으면서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죠. 대기업도 마찬가지였어요.”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다. ‘회사에 다니는 이유 4가지!’라고나 할까. 돈을 잘 벌든가, 회사에 다니면서 내가 성장을 하든가, 회사의 비전과 나의 비전이 일치하든가, 아니면 함께 있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든가…. 그런데 이 중 어느 것에도 그의 직장 생활은 해당되지 않았다. “그걸 아는데 1년 4개월 정도 걸린 셈이죠.”
2010년 7월 입사했다가 2011년 10월 회사를 나온 그는 당초 미국에 가려고 했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때 이재웅(다음 창업자) 사장을 만나면서 진로가 수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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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인생이 좌우된다
“저에게 2가지를 물어보시더군요. ‘기업가인가, 인큐베이터인가?’ 그래서 기업가라고 했죠. 그랬더니 ‘기업가라면 문제가 심각한 곳에서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왜 인큐베이터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고 하시더군요. 큰 울림이 왔어요. 그래서 도서관에 처박혀 한 달 동안 공부하고 생각했죠.”
이 기간 동안 그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우선 내가 잘하는 것이 뭔가. 그의 결론은 사람을 만나고 소개하는 것. 두 번째는 뜨는 서비스를 분석해 봤다. 카카오톡·핀터레스트·페이스북 등 성공하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의 공통점은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결국 SNS는 오프라인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깨달음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럼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잘하면서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정보와 기회의 양극화에 저는 관심이 많았어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혈연·지연·학연이 없어서 애당초 누구를 만나기 힘든 사람들은 어떻게 정보를 얻고 사람을 만날까. 진짜 정보는 면대면 소통에서 나오는데, 이런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주자는 결론을 내린 거죠.”
그래서 2012년 2월 위즈돔을 설립하고 3월 28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모토는 경험 공유 플랫폼. 사람과 만나 경험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지혜를 나누면 삶이 바뀐다.’ 위즈돔의 회사 소개서 맨 앞 페이지에 있는 말이다. 경험과 지혜에 대한 높은 탐색 비용을 줄이고 삶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고 봉사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한편 자신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어떤 주제든 가능하다. 만남을 통해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취업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준비해야 하나?’, ‘유럽 여행을 가야겠는데, 싸게 다녀올 방법은 없나?’, ‘나도 벤처 창업을 하고 싶은데,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까?’ 등등.
지혜의 공유를 만남을 통해 경제적인 가격으로 거래하고 위즈돔은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현재 위즈돔 사이트에는 카테고리별로 각 분야에서 300명의 전문가 또는 경험 많은 이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여행·취업·독서 등등. 이 숫자가 5000명이 되면 유의미한 숫자가 될 것이라는 게 한 대표의 생각.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내가 무엇을 할지를 결정합니다. 그걸 좀 더 경제적인 비용에 좀 더 많은 기회 속에서 가능하게 하겠다는 거죠. 모두가 알고 있지만 비즈니스화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출저-한국경제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