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사의 콜센터 직원이 고객 한 사람과 7시간 28분간 전화 통화를 했다면 그 직원은 어떻게 될까? 상사에게 불려가 시말서를 쓰거나, 경고 조치를 받을지도 모른다. 또 업무를 게을리 하는 직원으로 각인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회사’에서는 다르다. 그는 ‘우수 직원’으로 칭찬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무실에 사진이 걸렸다. ‘이 회사’는 바로 미국의 온라인 쇼핑몰인 ‘자포스’다.
지난 2009년 7월, 연매출 190억 달러가 넘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거대 공룡’ 아마존이 신발과 의류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자포스를 12억 달러에 인수했다. 세계 최대, 최고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그동안 각 분야의 탄탄한 쇼핑몰들을 최대 3억 달러에 인수했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12억 달러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 마케팅 전문가들이 ‘강자가 약자를 먹어치웠다’는 식의 인수 합병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존이 ‘물건 판매업자에서 서비스 컴퍼니’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만만치 않은 적수인 자포스를 아군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한다는 점이다.
아마존이 자포스에 주목한 까닭은 무엇일까.
자포스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바로 ‘고객충성팀(Customer Loyalty Team)’이라고 불리는 콜센터다.자포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콜센터 전화번호가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보통 콜센터에 있는, 고객에게 속사포처럼 쏟아낼 문장을 적어놓은 매뉴얼이 자포스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직원들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고객들과 통화하고, 매일의 날씨나 어제 있었던 야구 경기,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고객과 몇 시간을 상대해도 좋고, 못 팔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점은 고객이 만족하고 감동받았냐는 것이다. 콜센터 직원이 서비스 품질에 대해 주의를 받는 경우는 오직 고객이 만족하지 못했을 경우뿐이다.
대다수의 회사에서 콜센터는 어쩔 수 없이 두는 필요악이라고 치부되기도 하지만, 자포스에서 컨택센터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포스의 전체 직원 1500명 중 400명 정도가 컨택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신입사원의 경우 입사 후 4주간 유급 훈련을 받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4주간의 훈련 중 자포스의 10대 가치를 실행할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2000달러의 보너스를 주고 정중히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실제로 보너스를 챙기고 나가는 사람은 고작 2~3% 정도라고. 이러한 컨택센터에서 드러나는 자포스의 서비스 철학은 흥미롭다.
컨택센터 직원들은 고객과의 통화를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긴다’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콜센터 직원들은 자포스에 없는 물건을 찾는 고객에게 경쟁사를 알려주기도 하고, 늦은 밤 근처 피자집 전화번호를 묻는 생뚱맞은 고객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기도 한다. 결혼식에 입고 갈 양복과 어울리는 구두로 무엇이 좋을지 묻는 고객에게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문의들이 판매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어찌 보면 손해 보는 장사일 수도 있지만, 자포스의 CEO 토니 셰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한 마케팅 비용의 일부일 뿐이라고 간단히 웃어넘긴다. 자포스가 지향하는 것은 당장 하나의 제품을 팔기 위해 고객을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감동시키고 평생 가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객을 위해서는 비효율도 기꺼이 감수한다.
콜센터 뿐만이 아니다. 물류센터 운영도 흥미롭다.자포스의 물류 창고는 24시간 365일 운영된다. 고객 주문을 일정량 모았다가 한꺼번에 재고 상품을 수거해 운동하는 게 창고 운영 측면에서 효율적이지만, 자포스는 효율보다 고객을 먼저 생각한다. 고객들은 오후 늦게 주문을 하더라도 그 다음날 오전 ‘행복과 함께 포장돼 있음(Packed with Happiness)’라고 적힌 자포스 상자를 받아볼 수 있다.신속 정확하게 배달되는 자포스의 ‘놀라운 고객만족 정신’ 때문에 고객들은 홈페이지에 ‘자포스가 항공사를 차렸으면 한다’라는 애교석인 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자포스의 이러한 저력은 CEO인 토니 셰이의 철학에서 나왔다.한 인터뷰에서 그는 “하루 24시간 중 10%만이라도 좋아요. 어떻게 하면 직원과 고객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한다면, 회사는 어떻게 변하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실제로 자포스에서는 고객과 직원을 최고의 자산으로 생각한다. 의료보험과 치과보험 적용은 물론, 직장 내 복지시설까지 자포스의 직원에 대한 투자는 상당하다고 한다.
마음에 맞는 직원들이 똘똘 뭉쳤고, 회사는 그 직원들에게 기꺼이 투자하고 그들을 감동받게 했기 때문에 고객에게도 그 감동이 전해지는 것이다.
고객을 위해 극단까지 갔다고 호평 받는 자포스는 미국 내에서도 이 회사를 벤치마킹 하기 위한 행렬이 줄을 잇는다.
자포스의 10대 가치
01 서비스를 통해 ‘와우(wow) 경험을 선사한다.
02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추진한다.
03 재미와 약간의 희한함을 창조한다.
04 모험정신과 독창적이며 열린 마음을 유지한다.
05 성장과 배움을 추구한다.
06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며 솔직하고 열린 관계를 추구한다.
07 긍정적인 팀 정신과 가족 정신을 조성한다.08 좀더 적은 자원으로 좀더 많은 성과를 낸다.
09 열정적이고 결연한 태도로 임한다.
10 겸손한 자세를 가진다.
- 출처 : 월간 혁신리더 2011년 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