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나의 전공 박재훈 나무링크 대표
글 이종철 기자 jude@websmedia.co.kr
내 삶이 나의 전공 박재훈 나무링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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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학생활을 자유와 낭만으로 묘사하지만 경우에 따라 대학은 투입대비 산출물이 뛰어나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사람도 실무자가 아닌 경우가 허다한 대학에 반대하듯, 진학을 포기하고 세상에서 많은 것을 배운 이를 만났다.
그 결과물은 우리가 그토록 목을 매는 ‘소셜 마케팅’과 ‘플랫폼’ 전문가로 돌아왔다. 겸손하게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는 그의 레퍼런스는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다.
"학력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위를 따고 각종 산업 기능사 자격증을 섭렵하는데, 단기 목표로 자격증 하나를 선택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 자격증과 서버 엔지니어 생활이 그에게 대기업 입사 기회를 가져다줄지는 상상도 못했다."
박재훈 나무링크 대표는 글쓰는 것이 좋아 국문과로 진학하려 했던 국어교사 지망생이었는데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진학을 포기했다. 어른들이 하는 “기술 배워라, 기술 배우면 먹고 산다”는 말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박 대표는 홀로 서울로 입성하고, 기술 중 비전이 최고인 ‘컴퓨터 기술’을 배우러 한 직업학교에 입학해 생활비를 근근이 벌어가며 ‘기술’을 배운다.
스물한 살 첫 직장은 여성 의류 쇼핑몰. 당시 패션에 무관심한 박 대표는 라운드넥과 브이넥도 구분할 줄도 몰랐던 초짜지만 함께 일하는 추억의 ‘웹마스터’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직접 옷을 팔았다. 군대를 마치고도 이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옥션에서 카테고리 내 니즈가 있는 시장을 찾던 중 ‘에스닉’ 키워드를 도출했다.
물품 수급을 위해 무작정 이대 앞 외국인 골목을 방문해 액세서리를 팔아주는 조건으로 ‘인도 의상을 팔자’고 제안했고, 외국인의 승낙을 받아 재도약한다. 보통 벌당 3,000~4,000원의 수익을 얻는 게 기본 의류 사업이었다면 에스닉 의상은 2만~3만 원의 수익을 안겨다 준다. 그런데 사업에서 간과한 것이 있다. 인도엔 겨울이 없다. 이 젊은이는 자신이 만든 시장을 져버릴 수 없어 의상 제작자를 찾아 제작도 해봤으나 ‘인간이 입을 수 없는 옷’을 만드는 바람에 포기했다. 사진을 멋들어지게 찍어 물건은 모두 팔았지만 모두 반품됐다. 인간이 입을 수 없으니까.
이후 그는 서버 엔지니어로 전업해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학력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위를 따고 각종 산업 기능사 자격증을 섭렵하는데, 이름도 생소한 유통관리사, 문서실무사, 씨스코, CCNA 등 자격증 스물두 개를 땄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였다. 단기 목표로 자격증 하나를 선택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 자격증과 서버 엔지니어 생활이 그에게 대기업 입사 기회를 가져다줄지는 상상도 못했다.
잠깐 일을 쉬던 박 대표는 자격증을 위해 드나들던 상공회의소 근처의 휘황찬란한 건물을 보며 ‘이런 데 다녀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던 바로 그날! 전 회사의 팀장에게 “이 회사 사람 뽑으니 면접이나 봐라”라는 말을 듣고 자격증 몇 개를 추려 면접지를 확인했다. 놀라웠다. 바로 그 건물이었다. 운명이다. 학력에 대한 편견 섞인 면접에서 소신 있게 자신의 삶을 밝힌 대표는 재계 50위 안에 드는 대기업 대성그룹에 당당히 입사하며 운명임을 증명한다.
당시 맡은 일은 네트워크 엔지니어였는데, 이전의 직업으로 그림을 볼 수 있는 직업이었다. 이십 대 초중반 직무 과정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듯 좋은 교육이 된 것이다.이후 그는 번듯한 직장을 뒤로하고 창업 세계로 뛰어들었다. 여기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현재 주력 서비스인 ‘러브송데이’는 지인의 결혼식에서 엉망진창의 축가들을 보며 막연히 떠올렸다. 그러다 서바이벌 오디션 ‘슈퍼스타K’에서 김보경의 눈물을 보며 ‘능력 있는 친구가 왜 돈을 벌지 못할까’하는 아이디어와 결합돼 시작됐다.
이는 대표의 노트 속에 고이 잠자던 아이디어였지만 페이스북 창립을 다룬 영화 ‘소셜네트워크’를 보며 현실화시켰다. 일주일 만에 페이스북을 만드는 주인공을 보며, 본인의 아이디어가 ‘축가계 페이스북’이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뛰었다.러브송데이는 단순한 축가 대행사가 아니다. 음악 전공자가 스스로를 등록하고, 예비부부가 직접 선택하는 오픈마켓이며 그는 여기서 약간의 수수료만 받는다.
단순 소개에서 멈추지 않고 3만~5만 원 정도 하던 축가 가수들의 몸값을 10만 원 수준으로 올려 그들이 가수가 될 때까지 김보경과 같은 가난한 세월을 보내지 않길 바라는 대표의 마음이 담겨있다. 여기에 폭리를 취하던 각종 웨딩 업체와의 연결을 통해서도 수익이 생긴다. ‘웨딩 플랫폼’이 완성된 것. 현재의 러브송데이는 박 대표가 생각한 것의 30%만 구현됐지만 축가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엔 그의 뛰어난 소셜 마케팅 방법론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업체 운영을 준비하며 소셜이 중요한 시기가 올 거라고 판단한 박 대표는 관련 도서가 없는 걸 깨닫고 직접 체험하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SEO(검색엔진최적화)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재밌는 자료를 위해 구글 검색을 달고 산다. 전문가와 놀러 간 무인도에서 ‘맥주를 먹고 싶다’는 ‘갑’의 한마디에 왕복 40분을 뛰어 맥주를 사왔던 일화도 있을 정도로 절실했다.
그가 만든 페이지는 대 기업용 57만, 소상공인용 30만의 좋아요를 기록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으며, 페이스북에서 삭제조치 당한 ‘전과’가 있다. 현재 박 대표는 여러 기업에 마케팅 컨설팅을 지원 중이며 그가 손댄 페이지나 유튜브는 좋아요/조회수가 10만은 기본이다. 기업 페이지 이벤트 포스팅 1회의 단가는 전문가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다.
자사 브랜드 러브송데이는 상품 이벤트를 하지 않는 페이지지만 국내 브랜드 페이지 중 라이크 수 기준 Top 20내에 꼽힌 적이 있으며 현재도 상위 랭커(약 9만 2천 명)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러브송데이의 경쟁 업체 폐업 시 도메인을 모두 사들이고 있으며, 꾸준히 블로그 포스팅 중이다. 러브송데이의 가수들은 실용음악 전공자인 동시에 MBC 서바이벌 오디션 ‘위대한 탄생’ 출연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이들 중 두세 명이 현업 가수로 데뷔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꿈은 웨딩 플랫폼 구축을 시작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불합리함을 해소하고 전문 인력에 제대로 된 몸값을 보장하는 중계 플랫폼을 만드는 것. 이미 대기업 연봉을 뛰어넘은 그이지만 타인에 대한 선의로 무장하고, 시장을 창출할 줄 알며, 진화하는 마케팅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앞날의 찬란함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