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엔젤투자가, 노정석 CSO의 네버 엔딩 스터디(Never Endinig Study)
실리콘밸리에서는 엔젤 투자자들이 창업 인프라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미국 벤처연구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총 엔젤 투자 금액은 25조 원에 달한다. 이들이 투자한 신생회사는 수백만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끊임없는 경제 성장을 이끌어낸다.
엔젤 투자자의 모임인 엔젤 클럽(Angel Club)은 기업가, 회계사, 세무사, 변호사 등 다양한 개인 투자자로 구성되어 자본을 투자할 뿐만 아니라 각 직업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투자 기업이 경영을 잘할 수 있도록 멘토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2011년 기준 고작 9개에 불과했던 국내의 엔젤 클럽이 현재 70여개에 달할 정도로 엔젤투자는 활성화되어 있다.
엔젤투자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실리콘밸리 오라클의 프로덕트 매니저 조성문은 가장 이상적인 엔젤 투자자는 과거에 창업을 해서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 ‘실리콘 밸리의 엔젤 투자’)자신이 창업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통찰력과 직감을 이용해서 투자 회사를 선택할 수 있으며, 후배 창업자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다. 또한 다른 창업가들과 인맥이 좋기 때문에 이들을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연결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인터넷의 확산과 더불어 벤처 붐을 처음 겪은 성공 1세대 벤처 창업자들이 그 동안의 성공 노하우 공유와 자금 조달에 적극 나서서 후배 벤처 사업가를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엔젤투자가 활성화되었으며 그 중 앞서 제시한 이상적인 엔젤투자자의 조건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노정석 파이브락스(5rocks) 최고전략책임자(CSO)다.
노정석 CSO는 1997년 보안서비스업체 ‘인젠’ 창업에 참여했으며 2002년 보안업체 ‘젠터스’를 창업했으나 실패했다. 2005년 블로그 서비스업체 ‘태터앤컴퍼니’를 설립했으며, 이를 국내 스타드업 기업 가운데 최초로 구글에 매각한 바 있다. 이후 2010년 ‘아블라컴퍼니’를 설립. 현재 ‘파이브락스’의 최고전략책임자를 맡고 있다. 창업과 실패의 경험, 성공적인 기업 매각의 경험, 회사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면서 더 혁신적인 회사를 키워가는 ‘연속적 창업가(Serial Entrepreneur)’이자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엔젤투자자(Angel Investor)’로써 노정석 CSO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엔젤투자자이기에 앞서 파이브락스(5rocks)의 최고전략책임자를 맡고 있는 노정석 CSO는 일과 시간에는 회사 업무를 처리하고 밤 시간을 활용해 투자자로서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본인도 투자를 받는 회사의 대표로써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고. 당일 저녁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도 아홉 시와 열 시 반에 투자사와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 얼마나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노정석 CSO와의 인터뷰는 저녁 식사를 겸해서 이루어졌다. 밥 먹는 시간까지 인터뷰를 진행하느라 지쳐있을 법도 한데 엔젤투자에 대한 생각과 소신을 이야기하는 노정석 CSO의 모습은 시종일관 밝고 쾌활했으며 힘이 넘쳤다.
‘이윤’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엔젤투자
“저는 제가 하는 일이 투자라기 보다는 끌리는 사람, 좋아하고 일, 될 것 같은 비즈니스에 관람료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자금을 대고 이윤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즐거운 상황을 보면서 직접 참여하는 것이 제게는 중요합니다.”
노정석 CSO에게 엔젤투자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먼저 들을 수 있었던 답변은 엔젤투자자로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한 부분이었다. 스스로를 돈을 벌기 위해 시장을 분석하고 이익을 위해 투자할 기업을 선별해 돈을 버는 단순한 투자가가 아니라고 정의한 것이다.
앞서 제시한 노정석 CSO의 이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계속되는 벤처 창업을 경험하면서 스타트업에 대한 관점을 형성해 올 수 있었다. 스스로의 사업 경험을 토대로 끌리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경험을 공유하고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 자연스럽게 엔젤투자로 이어져왔다. 노정석 CSO는 티켓몬스터의 창립 때 멘토 역할을 하며 이를 국내 최대 소셜커머스 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에도 여러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를 계속해 왔다.
스타트업 기업의 경우 단순한 사업 아이템 하나로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올바른 사업 전략 수립은 물론 적절한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성장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기에는 물론 운도 필요하다고 노정석 CSO는 말한다. 본인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중요한 투자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런 경험의 지금의 자리를 가능하게 했다.
가장 중요한 투자의 기준은 ‘사람(리더, Leader)’
“새롭게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은 스스로에 대해 많이 어필하려고 합니다. 저 역시 고객과 투자자들에게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중 끌리는 사람, 매력적인 사업계획을 보면 도와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껴요.”
노정석 CSO는 현재 14개사를 관리하고 투자하고 있다. 파이브락스의 업무를 보는 동시에 계속해서 엔젤투자자로서의 업무가 이루어지는데, 전화로 진행사항을 공유하고 조언을 하거나 인재를 소개하고 추천하기도 한다. 중요한 계약의 경우 경험을 살려 서류작업을 보조하기도 하고 미팅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 모든 일들은 역동적이고 즐거운 영화 관람과 같다고 한다. 심지어 액션영화를 관람하고 있는데 총을 쥐어주는 경우도 있다는 너스레가 살가웠다. 그래도 한번에 모든 투자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집중하는 업체는 두 개 정도라고 했다.
이렇게 바쁜 일정 속에서 투자의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 투자를 원하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끌리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되는데 이런 경우 어떤 식으로든 지원을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것도 여유가 있거나 여러 상황이 맞물렸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다.
평소에도 노정석 CSO에게는 투자를 문의하는 수많은 메일이 오지만 이를 거의 읽지 못한다고. 열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단다. 책상에 앉아서 사람을 만나면 안 된다는 것이 노정석 CSO의 신조이기도 하다. 본업도 있고 개인 생활도 있기 때문에 진짜 중요한 메일이 아니면 열어보기 힘들다고. 신뢰하는 사람이 신호를 주면 메일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금 챙겨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바빠서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투자의 기회가 생기면 대표자와 면담을 가진다. 노정석 CSO는 사업계획서를 놓고 천천히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하루 정도 시간을 두고 보면 투자할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처음 대표자와의 면담에서 마음에 든 회사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확신을 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노정석 CSO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그 동안의 창업 경험을 토대로 성공하는 기업에 대해 정의한 적이 있다.(Chester Life2, ‘어떤 팀이 잘 되는 팀인가?’) 그 중 가장 첫 번째 항목은 현명한 리더의 역량이다.
“사업계획이란 리더가 가진 독특한 관점이자 그가 가진 지식의 총합입니다. 사업계획을 세우는 것은 시장의 트랜드와 이슈, 사용자의 요구사항과 개인의 전문 지식,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는 다차원의 작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관점 자체가 성공 DNA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정석 CSO는 하나의 시장을 그렇게 다양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다른 일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더가 리더의 컬처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팀이 함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노정석 CSO는 대표적인 사례로 ‘미미박스’의 하형석 대표의 팀과 ‘눔(NOOM)’의 정세주 대표를 들었다.
노정석 CSO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엔젤 투자 외에도 티켓몬스터 창업과 투자로 인연을 맺은 신현성 대표와 함께 만든 신개념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회사 ‘패스트트랙아시아(FAST TRACK ASIA)’ 활동을 통해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회사로서 지식을 모으고 다양한 업체를 지원함으로써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평가’가 아닌 ‘대화’를 통한 끊임없는 공부, 투자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보완하고 학습
“시행착오는 매일 있죠. 언제나 가장 최신의 시행착오가 최악의 시행착오입니다. 실수를 하고 늘 배우고 다시 이를 반복합니다. 내가 어느 정도 지식(Knowledge)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실수를 하게 되는데, 순간 깨닫게 되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지 않고 내 속으로만 그림을 그렸구나……’
성공한 사업가로서 후배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없었을까? 노정석 CSO는 사업은 참 쉽다는 대답을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는 있기 마련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업에 정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투자에도 정해진 룰은 없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모양을 달리하는 게 사업이라는 것.
어려운 것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훌륭한 사업이란 그런 각각의 상황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있는 걸 그대로 보는 단계에 이르면 가히 사업의 신(神)이라 할 수 있다.
노정석 CSO는 [전략의 본질](노나카 이쿠지로, 비즈니스맵 2006)이라는 2차 대전의 성공적 전략의 요체를 평가하는 책에서 현려형(賢慮, Wise) 리더쉽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는 예를 들면서 상황에 걸맞은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투자를 결정하고 곁에서 사업을 보면서 코치할 때는 일방적으로 사업을 평가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코치를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노정석 CSO의 이야기는 인상 깊었다. 그는 관점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고 투자자인 자신이 상대방의 완벽한 사업계획을 알지 못했을 때는 우선 상대의 관점을 획득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독특한 관점 자체가 그 사람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우선 들으면서 내용을 배우고 정보를 충분히 숙고하고 지식의 총량이 상대와 비슷해졌을 때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시장과 사업에 대한 관점을 접할 수 있는 투자를 통해 노정석 CSO는 기존의 관점을 보완하고 사업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한다.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평소 환율이나 국제 경제 동향 등 다양한 정보를 늘 확인하고 있다.
노정석 CSO는 공부하는 사람이다!
“저의 공표된 직함은 파이브락스 최고전략책임자(CSO)입니다. 엔젤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부하는 사람에 가깝죠. 모든 것이 공부하는 과정입니다. 나는 공부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웃음)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실제로 그렇게 될까?’하고 생각합니다. 운 좋게 이런 위치에 있으니까 열심히 사업하고 투자하면서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 있는 건가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노정석 CSO는 삶을 변화시킨 계기로 스물일곱 살 여름에 받았던 병역특례 훈련소 입소 한 달을 들었다. 2002년 월드컵 보고 8월 입대해서 야간 각개 훈련을 하는 중 참호에 들어가 쉬는데 밤하늘에 초롱초롱한 별을 보고 진지하게 깨달은 바가 있다고. 불현듯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과 다가올 죽음을 떠올렸다고 했다. 열흘 간 훈련소 수양록에 살아온 과거에 대해, 상장한 회사와 관련된 사건, 사고를 생각하며 장문을 써내려 가면서 스스로가 똑똑하거나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단다. 그 때 들었던 결심이 다짜고짜 거부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사회의 시스템에 적응하자는 것.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대학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고 2003년에는 결혼도 하고 2004년엔 졸업장도 땄다. 그 때 이전에 놓쳤던 과목을 수강하고 책을 읽으며 잠 자는 시간을 빼고는 다 공부를 했다고. 그런 공부가 뒷받침되어 노정석 CSO의 관점을 형성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사례도 있지만 왜 실패했을까 알고 싶은 마음에 공부하는 과정이 더 재미있다.
노정석 CSO는 엔젤투자를 흥미로운 상황을 보기 위해 관람권을 구매하는 즐거움이라며 인터뷰를 시작할 때부터 내내 자신이 투자하는 기업의 상황을 영화에 비유했다. 엔젤 투자는 1920년대 초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유래한 용어다. 당시 무산 위기에 처한 공연을 후원해주는 사람들을 천사(angel)에 비유했고 이후에는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고 하니 노정석 CSO의 비유는 꽤 그럴싸하다.
노정석 CSO는 실재로도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며 좋아하는 영화는 반복해서 본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소셜네트워크’나 ‘머니볼’을 연상한 것과 달리 좋아하는 영화는 이연걸이 출연하는 ‘영웅’이라고 해서 의외였다. 또 ‘영웅본색’은 10번 넘게 본 명작이라며 홍콩누아르가 정서적 기반이라는 그는 벤처 창업에서도 이와 맞닿은 지점이 있다고 했다.
“몇 명이 팀을 이뤄 전장에 나서는 것처럼 벤처에서도 소영웅주의가 필요해요. 힘들어도 계속 그 일을 밀고 나가는 추진력, 신념은 많은 생각과 공부 끝에 생기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수한 경험과 많은 지식을 투입해야 한다는 건데, 벤처 기업의 대표는 정말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최근에 린스타트업 공부와 육아 공부(아홉 살 아들을 키우고 있다)를 중점적으로 하면서 사업과 가정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노정석 CSO. 최근 또 다른 취미인 카레이싱을 다시 시작했는데 아들이 아빠가 동네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고 해도 잘 안 믿더라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에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가득 찬 따뜻한 천사 같은 미소가 떠오르는 듯한 착시현상도 잠시, 인터뷰를 마무리한 노정석 CSO는 다음 미팅 준비를 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