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業자병법] 국내 1호 엔젤투자자 “고객 원하는 제품? ‘포트리스 게임’하듯 찾아라”
2016/12/30
비즈업
올해는 스타트업계의‘투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했던 시기였다. 지난 1년간 투자유치금 순위에서 상위권에 오른 곳은‘미미박스’(1,430억원),‘옐로모바일’(592억원),‘우아한형제들’(570억원) 등으로, 모두 창업 3년차 이상에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중견급’ 스타트업이었다. 반면 비즈니스 모델 검증이 부족하거나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초기단계 기업에 대한 투자 결정은 보수적으로 변해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은 스타트업이 상당수였다.
수년간 지속된 글로벌 경기침체와 국내외 정치경제적 악재가 쌓여 내년 투자 전망도 어두운 지금. 20년 가까이 벤처업계에 몸담아온 이택경(47∙사진) 매쉬업엔젤스 대표는“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내 고객’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고객이 원하는 것’을 알아야 투자자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이 대표의 사업 조언을 비즈업이 정리해보았다.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
- 올 한해 스타트업계의 투자 현황은 어땠나요.
“올해는 확실히 벤처캐피털(VC)의 투자 열기가 식은 것 같습니다. 지난해 정점을 찍은 뒤 한풀 꺾인 느낌인데요. 내년 분위기도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 VC 반응을 보면 열에 여덟아홉은 올해보다 적게 투자할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보수적으로 변한 거죠.”
- 투자시장이 보수화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비즈니스 아이템의 포화가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 시장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스마트폰 덕분이었습니다. 2010년을 기점으로 PC 대신 모바일기기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거죠. 시간이 흘러 이제는 스마트폰 신규 보급률이 80%를 넘어섰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도 이미 너무 많이 나와 있어서 혁신적이고 차별적인 사업을 생각해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이템 포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최근 들어 모바일 앱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서비스 시장은 더 이상의‘빈틈’을 찾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쿠팡이나 옐로모바일처럼‘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성장할만한 혁신적인 서비스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이미 있는 사업을 일부 개선∙변형한 스타트업만 늘고 있다. 투자자의 눈길을 끌 만한 신선한 비즈니스 아이템이 부족하다 보니 올해 VC 투자도 이미 시장성이 검증된 기업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 대표는 그러나“투자 자체는 보수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올해 투자자금(신규조합결성액)은 작년보다 더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언젠가 다 스타트업에 투자될 돈이니 아직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초기 단계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투자에 실패하는 이유는 아이템이 신선하지 못하거나 차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장이 원하는 제품∙서비스를 못 만든 거죠. 그럴수록 고객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내가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객이 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거죠. 자신의 사업에 애정을 갖는 것은 좋지만 콩깍지가 심하게 씌면 사리분별이 흐려질 수밖에 없어요. 고객의 눈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찾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최소한으로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 상의‘미니멀리즘’을 강조했는데, 저는 사업에도 이런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주‘미니멀’하게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본 기능만 구현한 뒤 그 제품에 고객들이 만족하는지 먼저 테스트해보고 이후에 하나씩 기능을 붙여 나가는 거죠. 심사를 받으러 오는 스타트업 가운데‘버전 1.0’ 모델이라고 가져왔지만 제가 보기엔‘버전 3.0’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땐 최소 기능만 갖춰서 다시 만들어보라고 조언하죠. 고객 반응도 모르는데 처음부터 100% 완벽한 제품으로 시작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미국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빌 올렛 교수는 저서‘MIT 스타트업 바이블’에서“먼저 최소 기능 제품을 만들라”고 조언한 바 있다. 목표 고객이 원하는 최소한의 기능만을 갖춘‘최소 요건 제품’(Minimum Viable Product·MVP)을 먼저 만들고, 고객이 이 제품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부터 검증해봐야 한다는 것. 스타트업계에서 이런 방식은‘린스타트업’(Lean Startup) 전략이라고 불린다. 이 개념을 도입한 실리콘밸리의 벤처사업가 에릭 리스는“린스타트업은 자원이 제한된 스타트업이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며“최소 기능을 갖춘 제품으로 고객에게 신속하게 피드백을 받고 그에 따라 실험을 반복해나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이 대표의 조언 역시 이런 전략과 맞닿아있다.
- 왜 린스타트업 전략이 필요한가요.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쓸 수 있는 자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로호를 발사할 때 엄청난 자본과 수년간의 준비가 필요했는데, 그건 대기업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이 큰 시장을 목표로 대규모 사업을 시작할 때나 취할 수 있는 방식이죠. 반면 스타트업의 방법론은 탱크로 대포를 쏘아 올리는‘포트리스’ 게임과 같아야 합니다. 이 각도로 일단 대포를 한번 쏴보고 너무 빗나갔다 싶으면 다시 각도 조절해서 도전해보는 겁니다. 오른쪽에도 쏴보고 아래에도 쏴보고 하면서 단계별로 조금씩 정답에 가까워지는 거죠. 주어진 자원을 활용해 작게 작게 도전해가면서 고객이 원하는 것에 다가가야 합니다.”
이 대표는“글로벌 진출이 가능한 스타트업일수록 투자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며 이미 포화상태인 국내 시장을 피해 해외 시장을 노려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이 왜 필요할까요.
“국내 시장의 포화가 심화될수록 글로벌 진출이 가능한 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시장의 크기가 더 크니까요. 다만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해외 진출은 한 손으로 하는 권투시합과 같거든요. 바둑으로 치면 몇 수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고요. 이미 그 시장에서 활동 중인 기업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을 만큼 제대로 준비하고 진출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습니다.”
/기사∙인포그래픽= 비즈업 조가연 기자 gyjo@bzup.kr
사진∙영상 촬영 및 편집= 비즈업 백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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