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마인드] 왜 꿈보다 삶의 자세가 더 중요한가.
2014/02/13
기타
2003년 2월 6일에 별세한 고려대 경영학과 김인수 교수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체신고 졸업 후, 1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겨우 야간대학에서 학부를 마쳤고, 34세에 미국 정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가, 하와이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인디애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3년의 MIT 연구원, 2년의 KDI 연구원 생활을 거쳐 42세에 KAIST 교수로 임용되고, 그 후 47세에 고려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20년 가까이 학문 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50편이 넘는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30편이 넘는 논문을 국내 학술지에 등재했다. 적어도, 2002년 기준으로 그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해외 학술지에 등재한 학자 중 하나였으며, 1998년에 세종문화상(학술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보통 이런 인물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평소의 습관에 따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큰 꿈을 갖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성취했다와 같은 스토리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행했던 여러 강연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교수나 학자가 되겠다는 '꿈' 혹은 '미래의 계획'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리고 '정말로 어쩌다 보니' 미국 정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게 돼 학문의 길을 걷게 됐고,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 과정을 거쳐 교수로 임용된 후에도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모든 것을 최소화하기로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기에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의 성공 비결은 '꿈'이 아니고 긍정적이고, 성실한 삶의 '자세'였다.
그렇다면, 왜 꿈보다, 미래의 계획보다 삶의 자세가 더 중요한가? 냉정하게 생각해서, 미래의 계획이란 무엇인가.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고, 통제할 수도 없는 대상이다. 허상이다. 계획은 나의 소원이고, 소망일 뿐이지, 현실이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너무도 부족하다.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경쟁이 위로 올라 갈수록 더 치열해지는 우리의 인생에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때보다 얻지 못할 때가 갈수록 더 많아진다. 학문의 길도 그렇고, 스타트업의 생활도 그렇다.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래의 계획을 자신의 유일한 성공의 지표로 삼으면, 의지의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부작용도 많다. 역시 김인수 교수가 평소 강조했던 것처럼, 그 계획이 성취되는 것이 본인 삶의 의미의 전부가 되면, 필연적으로 시야가 좁아진다. 일이 이뤄지지 않을 땐 좌절과 낙담, 실망하기 쉽고, 그래서 재기가 어렵고, 일이 뜻대로 될 경우에는 '미래의 계획' 중독증에 걸린다. 또다시 새로운 미래의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그걸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중독이 심하면, 심해질 수록,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않게 된다. 잘 되든, 안 되든, 갈수록 커지는 부작용을 감당해야 한다. 꿈은 좋은 것이지만 꿈이 절대적인 것이 되면 위험해진다.
즉, 꿈이 아니라 삶의 자세에 더 가중치를 두는 건, 결과보다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춰 삶을 사는 것을 뜻한다. 때로는 원하는 대로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삶의 자세가 된 사람은 섣불리 그 중에 어느 것이 더 긍정적이고, 어느 것이 더 부정적인지를 판단하지 않는다. 현실이 쉬워보일 때는 자신을 경계하고, 어려울 때는 자신을 훈련하면서 전천후로 전진한다.
일례로, 앞서 김인수 교수의 삶의 전반부를 다시 생각해보자. 유학길을 떠나기 이전인 30대 중반까지 그의 인생은 고난만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의 인격을 단력했고, 삶의 자세를 준비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의 안젤라 리 덕 워스 교수가 강조하는 성공의 제1조건인, 참고, 견디고, 결국 장기적 목표를 이뤄내는 힘인 그릿(grit)을 키웠다. 외부적으로 볼 때 그의 삶에 결과물이 당장 나오든, 나오지 않든 간에, 그는 꾸준히 내공을 키웠고, 그것이 결국엔 큰 업적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황금보다 더 중요하다. 역설적으로, 꿈은 꿈을 좇으면 이룰 수가 없다. 자신의 삶을 통해 많은 걸 성취해내려면, 그리고 내적으로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면, 꿈보다 삶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외부 조건을 선택할 수 없고, 그 결과물도 결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것을 대하는 내 자신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연습이, 습관이, 인격을, 실력을, 자산을, 그리고 업적을 만든다.
김재연
기술이라 쓰고 인간이라 읽는 정치학도. 네이버 서비스 자문위원을 맡은 적 있고, 스타트업에서 전략 매니저로 일한 바 있다. 블로터닷넷과 주간경향 등에 IT 칼럼을 기고하고, 쓴 책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소셜 웹이다', '소셜 웹 혁명',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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