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따르면 도박 중독자와 도박 중독자가 아닌 사람들의 차이는 거의 돈을 딸 뻔한 상황에 대한 반응에 대한 뇌의 반응의 차이다. 전자는 그런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도전하는 반면 후자는 그쯤에서 리스크를 감지하고 발을 뺀다. 달리 말하면, 이 둘 가운데는 인센티브 구조상 본질적 차이가 있다. 도박 중독자에게는 거의 돈을 딸 뻔한 상황도 실제 돈을 딴 것과 별반 다름이 없으며, 그들은 그 맛에 계속 도박에 빠져 산다.
도박 중독이라니까 대부분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느끼지만, 관계가 있다. 사실, 상당 부분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꿈에 도전한다는 것도, 그것이 무엇이든 도박에 가깝다. 그리고 도박 중독자들이 거의 돈을 딸 뻔한 상황에 대해서도 실제 돈을 딴 것 같은 심리적 보상을 느끼고 다시 위험 부담을 안고 도박에 달려드는 것처럼, 꿈 중독자들 역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불로 뛰어든다.
물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결국 자신이 원하던 걸 이뤄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꿈 중독이 꼭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제19대-20대 대통령인 링컨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 전까지는 번번이 선거에서 떨어졌다. 링컨도 해냈는데, 나라고 못할 게 없다.
나아가, 캐나다 출신 언론인, 저술가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한 것처럼 일만 시간의 법칙이 존재한다. 미국과 전세계의 음악계를 점령한 비틀주도 함부르크에서 무명 밴드로 공연을 하며 실력을 쌓아야 할 때가 있었다. 지금은 빛을 못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빛을 볼, 그 날이 꼭 올 것이다. 노력한다면 안 될 것이 없다.
그러나 노력해도 안 될 것은 많다. 정말 노력한다면 평균 이상을 하는 건 가능하겠지만, 탑을 노리는 건 불가능하다. 탑까지 올라가는 건, 운과 재능과 그리고 노력의 결합이 필요하다. 재능만 가지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도 문제가 있지만, 같은 맥락에서 노력만 한다고 재능이 문제가 안 될 것처럼 보는 사람도 문제가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내가 최고가 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언론인인 데이비드 엡스타인이 쓴 '
스포츠 유전자'(The Sports Gene)이란 책에 담긴 내용을 생각해보자. 이 책에 따르면 특정 종목에 뛰어난 운동 선수들은 나름의 엇비슷한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례로, NBA 선수들 중에 덩크슛을 할 수 없는 선수는 없다. 스퍼드 웹처럼 170cm도 안 되는 단신도 있지만, 대신에 그는 놀라운 점프력을 갖고 있다. 결국엔 그 점프력이 그의 신장의 결점을 보완해서 종합적으로 봤을 땐 비슷한 수준의 농구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은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탑 클래스까지 올라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그리고 사실 노력으로 따진다면 상위권 리그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노력 수준은 크게 차이가 없다. 그들 대부분이 일만 시간을 돌파한다. 따라서 일만 시간을 채우는 게 링컨이, 비틀즈가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은 될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되기 어렵다. 자신이 선택한 필드에 적합한 재능의 뒷받침이 없다면, 거듭 강조하지만, 탑을 노리긴 어렵다.
노력하면 꿈을 이룬다는 건 아름다운 이야기다. 우리는 그래서 그런 이야기의 이면에 있는 사실 관계를 따져보기에 앞서 감동하고 지지한다. 그러나 누구나 어느 분야에 대해서 노력하면 보통 사람 이상 잘할 수 있지만, 그 분야에서 특출나게 잘 하는 건 재능(gift)이 필요하다.
이건 당신이 당신이 꾸고 있는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나는 내가 이뤄야 할 꿈, 이룰 수 있는 꿈에 집중할 때, 가장 높은 성과를 내고,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뜻한다. 문제는 꿈이 아니라, 중독이 아니라, 어떤 꿈을, 어떻게 꾸고 있느냐는 것이다.
즉, 신이 이 세상을 만든 방식은 다양성이다. 하나의 꿈만이 옳다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재능과 환경을 부여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유는,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고유한 사명과 삶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내가 살아야 할 삶을 살 때 우리는 가장 충실한 인생을 살 수 있다.